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량 해전 (문단 편집) ==== [[역사에의 초대 임진왜란]] ==== 1992년에 제작된 KBS 역사 다큐멘터리 4부작. [[고니시 유키나가]]는 조명 연합군에게 포위당해 왜성에 갇혀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. 이렇게 되자 고니시 유키나가는 [[진린]]에게 그동안 조선에서 노략질한 금은보화를 탈탈 털어서 뇌물로 주고 자신들을 몰래 빼내달라고 사신을 보내 협상하지만 [[이순신]]이 엄청나게 빡돌아서 "우리 조선을 이 지경까지 망가뜨린 놈들은 절대 단 한 놈도 살려 보내서는 안 된다"며 길길이 날뛰게 된 탓에 협상이 결렬되었다. 이에 열받은 고니시 유키나가는 자신들이 잡아두고 있던 명나라 병졸 포로 중 2명의 손목을 잘라서 진린에게 그 4개의 손을 보내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. 일이 이 지경까지 가자 [[시마즈 요시히로]]가 고니시 유키나가를 구출하러 왔고 이순신은 이런 [[시마즈 요시히로]]를 완전히 박살냈다. 특히 이순신은 휘하 병력들에게 그동안 아무리 누가 뭐라 해도 자제하고 있었던 '''[[백병전]]까지 허락'''해가면서 왜군을 모조리 도륙할 것을 명령했다. 이 때문에 한밤 중에 해변에서는 조선군들과 왜군들이 각자의 군함을 옆에 두고 [[패싸움]]을 벌이게 된다. 무기를 든 병력도 있고 주먹질로 싸우는 병력도 있다. 이 전투에서 일본에 대한 이순신의 분노가 제대로 묘사되었다. 사실 이 부분은 고니시 유키나가를 구조하러 가는 왜군과 고니시 유키나가를 구조하지 못하게 막는 조선군 간의 [[현피]]였다. 결국 전투는 조명 연합군이 대승을 거두고 시마즈 요시히로는 비록 고니시 유키나가를 구출하는 데에 성공했으나 '''구조한 병력보다 전사한 병력이 훨씬 많았다.''' 이순신의 최후에 대해서는 [[열린 결말]]으로 여러 가설을 제기했다. 뭐가 옳다고 딱 잘라 주장한 것은 아니고 그냥 여러가지 가설을 내놓았을 뿐이다. "진두지휘하다가 조총에 맞아 전사했다", "이 전투엔 갑옷이 아닌 [[구군복]]을 입고 참전해 조총에 맞아 전사했다", "조총에 맞은 것이 아니라 바다에 빠져 전사했다", "전사하지 않았다. 15년 뒤 아무 이유 없이 이순신의 무덤이 800m 이장했다" 엔딩은 해가 뜰 무렵에 고니시 유키나가가 병력들과 같이 뛰어서 도망치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식량이 다 바닥나서 군마를 도축해 먹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. 맨 마지막에 허리와 다리에 큰 중상을 입고 엎드려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어떻게든 두 팔로 기어서라도 도망치려고 발악하는 왜병의 모습이 보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